광기와 우연의 역사 - 슈테판 츠바이크
(키케로에서 윌슨까지 세계사를 바꾼 순간들)

장르: 서양사/서양문화
출판: 2024년 05월 27일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
목차
- 키케로의 죽음과 로마 공화국의 종말
- 동로마 제국의 종말
- 불명을 향해 질주하다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부활
- 하루살이 천재의 비극
- 세계사를 결정지은 워털루 전투
- 괴테의 마지막 사랑
- 황금의 땅 엘도라도의 저주
- 죽음을 경험한 예술가
- 미국과 유럽을 잇는 해저 케이블
- 톨스토이의 마지막 날들 - 1910년 10월 말
- 남극 정복을 둘러싼 경쟁
- 봉인 열차
- 윌슨의 좌절
4.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부활
1741년 8월 21일 오라토리오 '메시아' 작곡을 시작하다
1731년 4월 52세의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리허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뇌졸증으로 쓰러진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다시는 일을 하지 못할거라는 의사의 진단과 더불어 그후 넉달동안 죽은듯이 지냈다.
몸이 마비되어 누워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대한 그의 불굴의 의지로 매일 9시간이나 온천을 하며 조금씩 조금씩 삶에 대한 열망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완전히 치유되어 아헨을 떠나는 날, 교회 앞에서 시험삼아 건드려본 건반은 이제껏 마비되었던 헨델의 오른손을 움직였고, 다시금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그렇게 건강을 찾은 헨델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는데, 1737년 캐롤라인 왕비가 세상을 뜨자 연주회는 중단되고 영국은 스페인과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오페라로 인해 생업을 이어가던 헨델의 빚은 늘어만 갔다.
그의 공연은 계속해서 취소되었고 빚쟁이들은 그를 압박하며 비평가들은 그를 헐뜯고 관객은 냉담하고 싸늘한 반응으로 침묵하여 헨델의 영혼은 또다시 몸이 마비되던 시절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우울과 패배감에 빠져 지내던 헨델은 시인인 제닌스의 새 작품에 대한 작곡을 부탁하는 편지를 받았고, 처음에는 불같이 화를 내며 편지를 내던졌지만 다시금 편지를 받아들게 되고 읽어나갔다.
첫 장에 '메시아'라고 쓰여있는 것과 동시에 다음의 첫마디는 헨델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위로를 받으리로다!
단순하게 여겨질 수 있는 말이지만 무기력했던 헨델에게는 신이 건넨 듯한, 마법과 같은 말로 그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곧 헨델의 꺼져만 갔던 창작력은 다시금 불이 붙기 시작했으며 이내 창작의 쾌감이 그의 온몸을 꿰뚫는 듯한,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으로 작곡에 몰두하였다.
헨델은 빚쟁이들이 계속해서 압박하고, 가수들이 축제일의 칸타타를 만들어 줄것을 요구하고, 왕궁에 오라는 요청도 무시한채 3주동안 방을 나서지 않고 그저 왼손에 빵 조각만 먹으면서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한채 작업에 몰두했다.
마침내 1741년 9월 14일 불멸의 걸작인 '메시아'가 탄생한다.
5. 하루살이 천재의 비극
1792년 4월 26일 혁명가 '라 마르세예즈' 태어나다
1792년 4월 25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프랑스와 독일의 국경 접경지역)

파리에서 온 전령이 루이 16세의 선전포고 소식을 전하자 모든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광장을 메우고 환호하며 하나의 축제로 여긴다.
한창 연설을 하고 건배를 하느라 법석인 와중에 디트리히 시장은 적을 향해 출정하는 부대를 위해 군가를 만들 것을 루제 대위에게 부탁한다.
집으로 돌아와 군가를 고민하던 그는 초조하게 걸어 다니며 거리에서 들리던 포고문과 연설, 건배사 등 어수선한 외침을 떠올리고 마침내 두 줄을 적는다.
나가자, 조국의 아들딸들이여,
영광의 날이 왔도다!
그는 자신이 써내려간 가사에 무엇인지 알수없는 힘에 이끌려 단숨에 곡조를 써내려간다. 돌연 그날 느꼈던 감정들과 거리, 술자리에서 들린 온갖 말들이 떠오르며 승리를 확신하는 마음과 자유에 대한 갈망 등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루제에게는 걸맞지 않ㅇ느 과도한 열광의 감정이 한순간 타올라 마법의 힘이 되면서 이 아마추어 시인은 자신의 능력의 수십만 배를 발휘하여 그는 단숨에 "라 마르세예즈"를 완성한다.
그는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을 자랑하고픈 마음에 서둘러 디트리히 시장의 집으로 향하고 그날 밤 파티에서 노래를 처음 선보인다. 그리고 그 모임에서 청중들은 친절히 박수를 치고 정중한 찬사를 남겼지만 대규모 군중을 열렬히 부추기는 그의 곡은 아직 날개를 달지 않은 상태이다.
루제의 "라 마즈세예즈"는 차분히 앉아 즐기려는 청중의 노래가 아닌, 함께 행동하고 함께 싸우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이다. 소프라노나 테너 같은 독창 가수가 아닌 수천명의 군중이 함께 불러 열광을 하는 노래이므로 아직 그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채 잊혀져 갔다.
그러나 한 작품의 타고난 힘이 영원히 숨겨지거나 은폐되지는 않는 법이다.
6월 22일 프랑스의 다른 쪽 끝 마르세유에서는 '헌법의 법' 클럽이 출정을 앞둔 지원병들을 위해 향연을 베풀고 있다. 연회가 한창인 중에 한 청년이 잔을 두들겨 모두의 주목을 청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조국의 아들딸들이여!" 아무도 모르는 새 노래지만(그 노래가 어떻게 그에게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이윽고 노래는 금새 화약통 안에 떨어진 불씨처럼 훨훨 타오른다. 서로 멀리 떨어져있던 감정들이 맞닥뜨려 모두를 무아지경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계기로 루제의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전역을 휩쓸며 승리의 행진을 이어간다. 프랑스 전쟁터에는 "라 마르세예즈"가 날개를 단 승리의 여신 니케처럼 하늘을 떠돌며 수많은 사람을 열광시키고 죽음으로 몰아간다.
하지만 운명의 아이러니일까? 그가 만든 노래는 프랑스 전역을 휩쓸고 다니지만 정작 루제는 휘닝겐의 작은 수비대에서 방벽과 보루만 설계중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노래를 까맣게 잊고있었으며 아무도 노래를 누가 만든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윽고 루제는 마르세유와 파리의 천민들이 그의 노래를 부르며 국왕을 몰아내자 혁명에 진저리를 치며 공안위원회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그리하여 루제는 조국을 배반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정에 서게 되며 가까스로 사형에는 면하게 되지만 시골 한구석에서 쓸쓸히 숨어든다.
결국 "라 마르세예즈"를 만든 루제는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가 남긴 불멸의 걸작은 프랑스의 국가가 되어 영광을 맞이한다.
6. 세계사를 결정지은 워털루 전투
1815년 6월 18일 나폴레옹의 패배
운명은 힘 있는 자와 힘을 휘두르는 자들을 찾아온다.
그러고는 여러 해 동안 단 한 사람만을 노예처럼 섬긴다.
그러나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운명은 야릇한 변덕을 부리며 별로 대단치 않은 사람에게도 자신을 내맡기기도 한다. 어쩌다가 아주 보잘것 없는 사람이 운명의 실마리를 손에 쥐게 되면 그 사람은 행복해하기 보다 겁에 질리기 마련이다. 영웅들이 세계를 놓고 벌이는 도박판에 끼어들게 되면 엄청난 책임을 떠맡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벌벌 떨다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운명을 놓쳐버린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친 사람에게 두 번째 기회는 영영 오지 않는다.
1815년 빈회의에서 오스트라이의 재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의 주도하에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의 사절들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맞이한다. 사슬에 묶인 사자인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했다는 것이다.
탈출한 나폴레옹은 다시금 권력을 잡고 연합국에 맞서 싸움을 이어간다. 나폴레옹의 대군은 리니(Ligny) 근교에서 프로이센군을 맞아 격퇴하고 이내 영국의 적장 웰링턴을 공격할 준비를 한다.
나폴레옹은 웰링턴과의 싸움에 있어 군대를 일부 떼어 그루쉬 원수에게 명령권을 넘긴 후 프로이센을 추격하고 영군군에 가세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루쉬는 뛰어나지는 않지만 성실하고 정직하며 용감하고 믿음직한 기병대장이다. 그러나 그루쉬가 최고의 지위에 오른 이유는 그의 업적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의 경쟁자들이 이전의 전투에서 차례차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리니 전투의 다음날 나폴레옹은 비가 오는 진창 사이에서 행군을 하게 되며 그의 군대는 진창과 함께 피로를 해소하지 못한채 웰링턴과 워털루에서 역사적인 전투를 벌인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계속해서 프랑스군은 언덕을 공격하지만, 양측 모두 엄청난 희생자와 함께 아슬아슬한 전투의 줄타기를 이어나가는 중이었으므로, 전투의 승패는 누구의 지원군이 먼저 오느냐에 따라 달려있었다.
즉 프로이센의 블뤼허가 먼저 오면 웰링턴이, 그루쉬가 먼저 온다면 나폴레옹이 승리할 것이었으므로 나폴레옹은 계속해서 전령들을 파견하며 노심초사해한다.
한편 나폴레옹의 지시에 따라 프로이센 군을 쫒던 그루쉬는 워털루에서 나는 대포소리로 인해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짐작하지만, 프로이센군을 추격하라는 황제의 명령이 적힌 문서에만 집착한다. 계속해서 주저해하는 그루쉬를 부지휘관 제라르가 워털루로 가야한다고 다그치지만 그런 모습에 불쾌해하여 황제의 명령을 계속해서 수행할 것을 선언한다.
결국 워털루의 전장에는 블뤼허의 프로이센 군이 합류하여 프랑스 군대는 파국이 들이닥친다. 프로이센의 합류로 인해 프랑스 군은 퇴각하기 바빴으며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워털루 전투는 그루쉬의 우매함으로 인해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난다.
평온한 시절에는 조심성, 복종, 노력, 신중함과 같은 시민적 미덕들이 큰 도움이 되지만 웅대한 운명의 순간이 오면 이런 미덕들은 불길 속에 맥없이 녹아내리고 만다.
웅대한 운명의 순간은 늘 천재만을 택해서 불멸의 형상을 부여하는 반면, 우유부단한 자를 경멸하며 밀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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